▷'목에서 흰 피 솟았다' 기적 논란, 불교 전파 기폭제 ▷불교세 확장 막으려는 귀족들의 거센 반발 잠재워
[기자수첩-원충만 선임기자]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는 데 있어 역활을 한 인물 '이차돈'은 527년 왕명을 어긴 혐의로 처형당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가 죽을 때 발생했다고 하는 '기적'의 사실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법흥왕을 구제해 주었으며, 처형 당시 보여준 그의 굳건한 믿음은 불교신도는 물론이거니와 비신도에게도 커다란 충격과 감명을 주어 신라사회에 불교가 널리 전파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신라에 불교를 융성시키기 위하여 이차돈을 기용한 인물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3대 법흥왕이었다.
당시 신라사회에 불교를 일으키려 했던 법흥왕은 자신의 뜻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관료가 필요했는데 마침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고 믿음이 굳건한 인물 '이차돈'을 만나는 행운을 얻게 되며 그에게 신라 최초의 절인 '흥륜사' 창건의 과업을 맡기게 된다.
그러나 불교를 공인하려는 국왕에 맞서는 귀족들의 저항은 매우 강력했다.
이차돈이 자신들의 성지로 여기는 '천경림'의 나무를 베어다가 절의 공사에 사용하며 이곳에 절을 창건하려 하자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한 귀족들은 법흥왕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따지면서 "당장 절을 세우는 일을 그만두라"고 하면서 매우 강도 높게 반발했다.
불교를 일으키려다 귀족들의 완강한 반발로 왕 자신이 쫓겨날지도 모를 궁지에 몰린 법흥왕은 하는 수 없이 이차돈을 제거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차돈을 희생양으로 삼아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작금의 정치현실을 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한뉴스 ▷원충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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